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엘리언 애런슨의 2002년 사회심리학을 다룬 저서에서 확증편향을 정의한 내용인데요.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려하고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으려는 경향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발간된 이선옥 작가님의 [단단한 개인]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확증편향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 입니다.
이 책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진영의 논리 가운데 헌법 가치를 무시하는 주장들이 많다고 예리하게 비판합니다. 물론 이 조차도 말도 안된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런 자세로는 누구와도 대화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고 오직 끼리끼리 뭉쳐다니면서 확증편향만 서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상대를 타자로 인식하고 적으로 간주하여 증오하는 일만 남게 됩니다. 서로 상대가 혐오세력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자세를 버려야 덜 나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전의 포스트와 함께 제가 확증편향에 관해서 포스팅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인터뷰 내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재 인터넷 정보 이용자들은 굉장히 많은 정보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 이용자들을 통해서 수익을 버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죠.
예전 정치와 선거는 51%를 가지기 위한 전쟁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 플랫폼은 51%는 커녕 1%의 이용자로도 큰 돈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완전히 건설된 10만명의 지지세력이 필요한 그들은 듣고싶은 말을 해주고 믿음을 공고히할 가치없게 편향되게 해석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영향력을 얻는 거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플랫폼전쟁에서 스스로가 선택할 필요가 있어졌습니다. 우리는 듣고싶은 것을 듣는 것으로 족한 것인가. 좀더 의식적으로 정보를 판단할 여지는 없는 것인가 말이죠.
우리가 경계해야 할 확증편향의 방향성은 크게 3가지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1. 확증편향 - 정보의 편향적 수용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자신이 세운 가설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정확히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 시점에서 성급하게 기존에 자신의 가치관과 결부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성도 해당됩니다.
SNS로 널리 퍼지는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보의 신뢰성이 확인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채 옮겨서 기사화된 경우나,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보의 진위여부가 가려졌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기사화의 경우 이런 정보가 퍼지고 있다식의 보도가 많고, 주변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은 정치적 성향이 맞는 커뮤니티끼리 정보를 주고 받고 있는 상황으로 유추가능합니다. 하지만, 2019년 중앙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진의 실험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일반적인 뉴스에 보다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경우 가짜 뉴스에도 상당한 신뢰성을 보였습니다.
이에 더불어서 자신의 입맛(정치적, 사회적 입장)과 맞지 않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조작된 정보라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도 보여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얼마전 속칭 '기레기'리스트를 만들어서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강요한다던지, 특정 주간지나 언론사는 어떤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식의 의견을 사실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2. 확증편향 - 정보의 편향적 해석
수용단계를 넘어서 정보를 해석하는 단계에서도 자신의 믿음이나 성향이 개입되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 정당의 대변인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새 화두인 정부주도의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서 정부와 여당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자평하고 있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은 연일 상황을 보도하면서 정부의 책임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숫자로 나오는 지표는 객관적이고 수정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해석의 영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팬데믹 보다 무서운 것이 '인포데믹'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디지털 뉴스의 속도로 인해 검증이 어려운 점을 악용해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내고 있어 국민들이 기사에 피로감을 느끼고, 나아가서 전체적인 뉴스의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해석은 기사를 읽는 당사자에게 있지만, 기사 자체가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수용자의 입장에서 해석이 편향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기사와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사를 읽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 확증편향 - 편향된 기억
장기기억의 경우 감정적인 부분이나 강렬한 몇몇 부분에 의해서 다른 부분들이 편향되게 기억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경험의 기억 역시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대와 예측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편향적 수용과 해석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나 예측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더라도,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확증편향의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은 교차 검증입니다.
기억에 의존한 판단을 하기 보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보를 찾는 노력을 하고 만약 그런 정보나 사실이 충분하지 않다면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4. 비확증편향은?
비확증 편향은 확증편향과 동시에 발행하는 심리적안정을 위한 저지를 말합니다.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정보에 반대되는 주장을 접하게 되면 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정보를 찾는 노력을 하게된다는 의미입니다.
영화 베킷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시민운동가를 만나서 빨간머리 소년을 납치한 대상이 극우주의자들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대사관 직원은 좌파주의자들이 한 짓이라며 반대되는 정보를 줍니다. 이 상황에서 베킷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나라인 미국 대사관 직원의 말을 믿는 것보다 시민운동가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것을 택합니다.
저는 앞서 이런 확증편향에 관한 포스팅을 하는 이유가 정치적으로 극단으로 나뉜 사람들과 페미니즘과 같이 사회적으로도 극단으로 나뉜 사람들이 과연 서로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선옥작가님의 우려에서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플랫폼 사회가 온다. 이재역 엮음]라는 책에서 극단의 사람들(책에서는 페미니즘을 역겨워하는 2030 남성을 지칭)이 서로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분노가 아닌 역겨움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대상의 행동에 대해 교정을 요구하면서 접근동기가 생기는 감정이라면, 역겨움은 개선의 여지를 바라지 않거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회피하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대상이라고 생각, 피하고, 배척하고, 소외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만 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서로를 역겨워하는 이유가 타당한게 있을까요. 개선의 여지가 없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대상이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요. 오늘 하루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가까뉴스로만 가득차있는 상대진영의 뉴스포털에서 한번 서핑을 해보고, 내가 믿고 있는 주장들과 사실들을 확인(확증편향, 비확증편향에서 벗어나서)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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