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유주환'작곡이다. 책을 집어 들었는데 작곡이라니 좀 의아하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지금은 그 의아함이 사라지고 저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작곡이라 쓰인것은 각 장에서 나타내는 분석적인 '언어'를 음악적인 '언어'로 치환한 것이다. 그 소리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저자와 같은 책 페이지에 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스펙트럼에 비춰서 무려 일곱가지 어두운 빛으로 뽑아내서 들춰낸다. 그 중에서 한가지 종류의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섯번째 빛, 동정이다.
"···타인의 시선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자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런 언어, 비언어적인 폭력으로 모멸을 주고 받는 이유도 저자는 분석하고 또 그런 사회시스템이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하지만 그 분석과 해법은 지금까지 많이 봐온것들이였다. 다를 것은 많지 않았고 다가오는 문장도 적었다.
특히 미국의 살인자들을 인터뷰해서 내 놓은 가장 많은 동기가 '깔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용한 것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장을 설명하기 위한 데이터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봐왔다. 마치 이 하나의 데이터가 '모멸을 주고받은 악순환'으로 치부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장을 통해서 저자는 사회시스템으로 우리를 완전히 보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수양법을 설파한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속 "톨레랑스"가 떠올랐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저자는 급작스런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우리를 여유없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책에서는 물질만능주의와 서열을 만드는 사회가 모멸의 악순환을 만들어 우리가 서로 모멸을 주고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여유있게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고 관계가 아닌 '나' 자신에 그리고 상대방 '당신'을 존중할 때 '품위'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많은 부분들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뭍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만의 사회적인 특성, 말하자면 도시화와 자본주의(천민자본주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기주의.. 나열하기 힘든 이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관계는 상실되고 개인주의도 정립되지 못한"이란 문장을 읽을 때 더욱 그랬다. 나는 한국에서 남자로 자라면서, 군대를 다녀오면서, 모멸을 받았다. 그게 '다 우리 잘되자고 하는 거야'라면서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부딫히면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 그 말들이 너무 아프게 밤에 다가오고는 한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은 내가 주었을 모멸감에 또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답할 수 있다. 나는 말을 배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위에서 저자가 스펙트럼으로 비춘 7가지의 모멸감을 주는 방식은 내 7가지 필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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